Interview | 온전한 나를 위한 삶

내가 가장 나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집이다. 공간은 누군가의 취향을 생각보다 더 많이 보여준다. 2011년부터 1인 가구 공방 소목장세미를 운영하고 있는 유혜미는 2층 단독주택에 산다. 작업실에는 나무가 가득하고, 작업실과 개인 공간 사이에는 작은 온실도 마련해뒀다.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고, 직접 만든 가구들이 적재적소에서 제 기능을 한다. 군더더기 없지만 따뜻한 기운이 낯선 이를 품어 안는 곳. 공간처럼 유혜미도 그랬다. 지금 머무는 공간을 혼자서 다 고치고, 가구도 채웠다고요.맞아요. 2층 단독주택인데, 집과 작업실로 쓸 수 있다는 점이 좋았죠. 마당은 주차 공간이 되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집과 작업실을 분리해 썼어요. 이전 작업실이 문래동에 있었는데,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해지면서 새로운 곳이 필요했거든요.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이 동네에 처음 오게 됐어요. 조용한 데다 간섭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더라고요. 폐업한 곱창집이었는데, 고쳐서 예쁘게 써보자 결정했죠. 직접 방문도 제작하고 책상도 만들었어요. 공간이 협소해서 책장은 천장 상부에 달았는데요,그래서인지 더 튼튼하고 색이 자연스러워요.(웃음) 부엌 찬장이나 서랍도 다 직접 만들었고요. 목공을 시작한 이유가 룸메이트와 함께 쓸 2층 침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직접 움직이는 편인가 봐요. 집도 고쳐 쓰겠다고 생각한 걸 보면.맞아요. 어릴 때부터 직접 경험하고 결과를 봐야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걱정될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번 해보고 아니면 말지 뭐’ 같은 마음으로 도전을 즐겨왔습니다. 도전의 시작은 언제였나요?어릴 때 <만들어볼까요>라는 EBS 프로그램을 진짜 좋아했어요. 제가 만든 장난감과 편지를 방송국에 보낼 정도였죠. 아버지도 예술계에 계셔서 제가 만든 걸 다 보관해두셨어요. 전시장처럼요.(웃음) 아마도 그때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대해 처음 감각적으로 느낀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그라피티도 했죠. 우리나라에 힙합 문화가 막 들어오던 시기였는데, 벽에 스프레이로 그림 그리는 걸 보고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했어요. 강남 어느 굴다리에서 그라피티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경기도민이 거기까지 찾아갔죠. 그라피티하는 학생으로 TV에 잠깐 나온 적도 있어요. 손으로 느끼는 감각을 좋아했나 봐요.그라피티는 스프레이 분사량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기 때문에 감각이 굉장히 중요해요. 약간 춤추듯 움직여야 스프레이가 잘 나오고, 머뭇거리거나 떨면 오히려 잘 안 되죠. 그런 직관적 행동이 저의 성향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목공으로 넘어온 셈인데, 가구를 만드는 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가구를 만든 건 순전히 필요에 의해서였어요. 당시에는 이케아 같은 곳이 없어서 직접 목재소에서 저렴하게 나무를 떼어다가 만들었죠. 그런데 작업을 할 때마다 늘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나만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걸 내가 쓴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죠. 도마를 예로 들어볼까요. 재료비랑 제 인건비 정도만 들이면 각기 다른 도마 5–6개를 만들 수 있죠. 용도별로 다르게, 디자인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폼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저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줬어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니까. 그러다 2011년에 소목장세미를 시작했습니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서 부담스러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해요.처음에는 사람들이 이걸 돈 주고 산다니까 혼란스러웠어요.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아르바이트만 하며 살고 싶진 않으니까 ‘한번 해보자’ 한 거예요. 우리나라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거나,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는 게 여전히 중요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살지 않았고, 내 인생이 그쪽이 아닐 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어요. 작가 지망생이었는데, 예술은 작품 자체로 가치를 만들고 여러 방향으로 영감을 만드는 일이라고 배웠으니까요. 이론상으로는 창작물을 돈이라는 가치로 환산해 사고파는 게 무의미했지만, 내심 불안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 일은 결과물과 돈이 눈에 바로 보인다는 점에서도 마음이 편했어요. 이 안에서도 얼마든지 작가주의 작업을 할 수 있고요.일하면서 기억에 남을 만큼 큰 어려움은 없었나요?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번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월세를 낼 수 있었다는 걸 보면 특별한 영향은 없었던 듯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전문적인 일이니까, 감내해야 하는 부분은 감내하고 포기해야 하는 건 포기하면 돼요. 자신의 색을 지키며 일할 수 있도록 주문 제작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데요.가구를 만들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드는데, 주문받아 완성한 가구를 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정확하게는 그 기분이 들지 않으면내보내지 않는다고 해야겠네요. 제가 가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거죠. 대체로 클라이언트가 저의 작품이나 작업 방식을 알고 주문을 의뢰하는 편이라 전적으로 저를 믿어줘요. 다만, 미팅이나 주문 의뢰 이메일에서 그런 게 잘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절하는 편이죠. 거절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나요?지금은 잘해요. 어릴 때는 “저한테 일을 맡겨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이랬죠.(웃음) 그러면서 배우는 거예요. 사실 거절에는 취향이나 비용, 시기 같은 명확한 이유가 있어요. 이유 있는 거절은 어렵지 않죠. 가끔 이 작업이 제 직업이고 이걸로 돈을 번다고 하더라도 타협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 순간 타협하면 돈을 위한 일이 되어버리는데, 그게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하지만 큰 기회라거나 취지에 동의한다거나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작업인데 비용이 문제가 된다면 그 안에서 해결하려는 편이에요. 그래서 처음부터 상황과 예산, 목표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조율하는 게 중요하죠. 혼자 일하는 것은 어떤가요?고요하고, 예측 가능해서 좋아요. 대체로 혼자 일하지만 코로나19 직전까지는 프로젝트별로 팀을 꾸렸어요. 본인 작업을 하면서 아르바이트처럼 도와주는 친구들이었는데, 덕분에 규모가 좀 더 큰 작업을 할 수 있었죠. 협업을 하며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어요. 함께 일하다 보면 각자의 능력치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요, 그럴 때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중요해요. 사람 대 사람으로 하는 작업이니까요. 인간적으로 대하면서 일을 잘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잘해온 것 같아요. 혼자 일하면서 ‘한 사람을 위한 가구’를 만들고 있는데요, 가구를 만들 때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요?실용성이요. 디자인 역사로 보면 장식에도 뚜렷한 이유가 있고 그것도 예술이지만, 저는 공간에 맞지 않는 장식은 배제해요. 실용성을 1순위에 두고 사용자에게 맞게 디자인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하죠. 그걸 똑똑하게 해내는 게 제 과제고, 클라이언트랑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특히 협소한 공간에는 실용적인 가구 하나가 중요한 역할을 해요. 사용자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동선에 따라 가구가 달라져야 하니까요. 가구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공간을 완성하는 요소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가구 제작을 의뢰한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보통은 공간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해당 공간을 어떻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게 가구를 짜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카페나 북숍 같은 상업 영역의 맞춤 제작도 하고 있는데요, 쉬는 공간인지, 판매를 위한 공간인지, 제품을 전시하는 공간인지 등 공간의 역할과 목표를 판단한 뒤 이를 가구로 풀어야 해요. 실제 경험이 혜미 님의 작업에 반영되기도 하나요?제가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원룸에서 원룸으로, 투룸에서 원룸으로. 질을 높이려면 필요한 물건이 많은데, 공간이 너무 좁아서 가구가 여러 기능을 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게 바로 멀티퍼포스Multipurpose 개념이에요. 저는 가정용 뜀틀과 평균대 같은 운동기구도 가구로 제작했는데요, 가정용 뜀틀은 A3와 A4 종이를 수납하는 두 개의 트레이, 벤치와 테이블을 결합해 만들었어요. 진짜 방에서 뜀틀을 하진 않겠지만 일종의 상상력을 발휘한 거예요. 운동기구는 조형적 아름다움도 있고, 운동을 위한 기구라는 점에서 실용적이기도 하죠. 가구와 운동기구라는 이질적 요소의 결합이 독특합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나요? 어릴 때부터 액티비티가 좋았어요. 배드민턴, 축구, 헬스, 요가, 필라테스, 무용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죠. 체육 시간에 남자애들이 운동장 뛰어다닐 때 여자애들은 보통 스탠드에 앉아 있잖아요. 발육 과정에서 운동을 통해 순발력을 기를 수 있는데, 아무리 축구를 좋아해도 여자애라고 안 끼워주더라고요. 늘 뛰어 놀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런 게 쌓이면서 운동기구라는 아이디어로 연결된 게 아닐까 싶어요. 최근에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을 보고 친구들이랑 풋살팀을 결성했는데요, 신발까지 샀지만 코로나19로 운동장을 폐쇄한 상태라 한 번도 하지 못 했네요.(웃음)서로 다른 요소를 잇는 작업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나요?이질적인 것을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감각이 새로워요. 새로움 자체에 매료되는 사람이라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저의 정체성 자체가 그렇죠. 한 가지에 머물지 않고 탐험하기를 좋아해요. 호기심도 많고요. DJ 시시와 소목장세미가 다르고, 이랑밴드 속 제가 달라요. 그런 다채로움을 즐기죠. 저는 제 아이덴티티가 뚜렷해서 오히려 일하기 좋다고 생각해요. 공방을 10년째 운영하며 위기도 많이 겪었겠지만, 코로나19는 전혀 다른 위기였을 것 같아요.소목장세미의 규모가 커지면서 상업 영역과 개인 클라이언트가 섞이면 서로에게 소홀해지는 상황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브랜딩 포지션을 상업 공간으로 잡았는데, 코로나19로 의뢰가 많이 줄었어요. 특히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발목을 잡히는 것 같은데요, 초창기부터 가구 라인을 구상했어요. 책장, 테이블, 의자, LP장 같은 오디오 가구 라인도 생각했고요. 구상한 그림은 있지만 고려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요. 장소부터 그렇죠. 작업실은 이미 짐으로 꽉 찼고, 창고를 쓰자니 그것도 월세가 나가고…. 코로나19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좋은 선택일까 싶더라고요. 지금은 도전보다 소규모로 여러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해요. 직업을 바꿀까 생각할 정도로 위기가 있었다고요.유튜브 채널을 여는 것도 생각했어요. ‘썰’ 푸는 거 말고 조용히 기술만 보여주는방식으로 저 나름대로 열심히 찍긴 했는데요, 너무 재미가 없더라고요. 활발한 성격인 데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카메라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죠. 코로나19 이전에는 꿈이 많았어요. 사비를 들여서라도 일단 해보고 실패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게 어려워요. 일감 자체가 줄었고 경기도 안 좋고요. 나를 둘러싼 환경이든 불안이든 누구나 일을 하며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닥치면 해결 방법을 찾아서 나아가면 되는데, 코로나19는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보니 확실히 좀 다른 이야기예요. 정말 다 때려치울까 싶어 제빵도 배워볼까 했죠. 학원도 알아보고 내일배움카드 같은 것도 찾아보고요. 근데 업을 바꾸는 것 자체도 큰 도전이더라고요. 그걸 제가 잘할지도 모르겠고요. 지금 하고 있는 목공은 감사하게도 잘하면서 제 성향과도 맞는 일이에요.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내가 지금의 일에 맞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여기까지 해올 수 있던 거죠. 인터뷰 마지막에 늘 이것저것 해보겠다고 떠들었는데, 지금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냥 “문제 없이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가 되어버렸죠.(웃음) 칼럼니스트인 나는 오랜 회사 생활을 끝내고, 2017년부터 혼자 일했다. 5년 차 프리랜서가 됐어도 사장인 내가 직원인 나를 어르고 달래며 완성하는 작업에는 도통 적응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일과 관련한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점이 가장 막막했다. 소목장세미의 경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신 그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뛰어들었고, 취향과 재능이 다른 사람들과 모였다 흩어지며 일의 범위를 확장했다. 가구와 운동이라는, 목공 환경의 소음과 디제잉이라는 이질적 요소들을 연결함으로써 자신을 브랜딩했다. 그와 대화하면서 삶과 일은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나를 지키며 일하는 것이 온전한 나로 사는 법이라는 것을 배웠다. Writer 장경진Photographer 이현수

Mindgraph magazine 마인드그라프 매거진

logo
LOG IN 로그인
  • HOME
    • ARCHIVE
      • COUNSELING
        • COMMUNUTY
          • 마이리추얼
          • 체크리스트
          • notice
          • Q & A
        • SHOP
          • APP
            • ABOUT

              Mindgraph magazine 마인드그라프 매거진

              logo
              • HOME
                • ARCHIVE
                  • COUNSELING
                    • COMMUNUTY
                      • 마이리추얼
                      • 체크리스트
                      • notice
                      • Q & A
                    • SHOP
                      • APP
                        • ABOUT
                          Search 검색
                          Log In 로그인
                          Cart 장바구니

                          Mindgraph magazine 마인드그라프 매거진

                          logo

                          Mindgraph magazine 마인드그라프 매거진

                          logo
                          • HOME
                            • ARCHIVE
                              • COUNSELING
                                • COMMUNUTY
                                  • 마이리추얼
                                  • 체크리스트
                                  • notice
                                  • Q & A
                                • SHOP
                                  • APP
                                    • ABOUT
                                      Search 검색
                                      Log In 로그인
                                      Cart 장바구니

                                      Mindgraph magazine 마인드그라프 매거진

                                      logo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구글 플러스
                                      Terms of Use
                                      Privacy Policy
                                      Confirm Entrepreneur Information

                                      Company Name: 마인드그라프 | Owner: 이누리 | Personal Info Manager: 노주선 | Phone Number: 02.6949.4774 | Email: mindgraphlove@gmail.com

                                      Address: 서울시 서초구 양재천로 95-4 세원빌딩 2F | Business Registration Number: 284-87-02136 | Business License: 제2021-서초-3634호 | Hosting by sixshop

                                      floating-button-img